프로젝트 설명

Role playing, 2010~

 

 

 

 

 

 

 

 

 

 

 

 

 

 

 

 

 

 

 

 

 

 

 

 

 

 

 

 

 

 

 

 

 

 

 

 

 

 

 

 

 

 

 

 

1. 역할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매체로 대변되는 사회로부터 역할과 그에 맞는 행동양식을 요구당하고 길들여진다.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사람을 사귀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 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역할에 가려진채 어느덧 우리는 내가 아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광고로 대표되는 브랜드의 홍수속에서 사람들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되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선망의 표본을 닮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살고 있다. 거울 속 모습이 진정 내가 바라던 모습인지,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은 아닌지 구분이 어렵다.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사회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많은 역할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퇴근과 함께 직장인 코스프레가 끝이 나면, 자식 혹은 가장의 역할을 수행 한다. 사회로부터 요구되는 일종의 가면들.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는 요구 혹은 억압 속에서 우리는 여러 역할을 바꿔야 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더 좋다고 하는 역할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단상이자 슬픈 현실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백발노인의 모습을 하고,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께 “아부지,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요?” 라고 묻는다. 한 평생을 아버지 역할에 지쳐 내뱉은 노인의 작은 외침이 아닌던가. 가족에 대한 희생정신은 차치 하더라도, 그 속에 진정 자신이 있을까 싶다.

2. 역할놀이(롤플레잉:Roll Playing)

일년에 한 번 할로윈데이가 되면 사람들은 밖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버리고, 자신의 모습을 한껏 바꿔 거리로 나와 일상 탈출의 욕구를 만끽하며 스스로를 표출한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역할이라는 여러 개의 가면을 모두 내려놓은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은 자유로워 보이고, 심지어 포즈는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맞서고 오히려 그것을 당당히 즐긴다.

3. 역할을 벗는다는 것

나는 작업 중 할로윈데이에 촬영된 사진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하나의 사실과 마주하게 됐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억압을 벗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저 매체에 세뇌된 표출의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 지각된 타자의 욕망일 뿐이라는 것, 곧 또 하나의 가면을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곧 ‘자유로운 사람 역할놀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속 사람들은 직장인, 학생, 부모 등 자신을 옥죄는 ‘역할’이라는 가면을 벗고자 치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왔지만,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들에 비슷한 포즈들이다. 어쩌면 결국 매체로 만들어진 ‘자유’라는 주제의 사회적 프레임 안에 갇혀 있을 뿐,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할로윈데이에는 ‘자유로운 역할의 사람들’ 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4. ‘트루’한 인생을 사는 나는 존재하는가.

철지난 20세기의 영화인 ’트루먼쇼’가 떠올랐다. 영화는 주인공 짐캐리가 태어나서부터 30년간의 삶을 전세계에 생중계 되는 걸 모르는 채 살다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자유를 찾으려 도망쳐보지만 그가 다다른 곳이 여전히 스튜디오였다는 장면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매스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광고에 묻힌 채 자신을 포장해, 결국 역할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요구되는 역할을 피해 ‘할로윈데이의 자유인’이 되는 우리들의 행위가 본래 목적을 잃고 결국 또 하나의 가면을 쓰는 것에 불과하다면, 영화 속 주인공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결국 사회인이고, 사회인으로서 역할의 굴레를 거절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역할에 갇혀 가면놀이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역할놀이’라는 사진을 통해 잠시나마 그 사실을 공감하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찾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